2014년 12월 17일 개봉한 한국 영화입니다.
배경은 1950년대 6.25 전쟁 때 흥남 철수작전부터 독일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 이야기, 베트남 전쟁, 이산가족 찾기 등 한국전쟁 이후에 대한민국의 역사가 담겨 있는 격변기를 모두 겪어낸 주인공의 이야기입니다.
황정민 배우의 영화를 자주 리뷰하게 되네요. 명배우의 명영화입니다.
1.영화의 이해를 돕는 역사들
흥남 철수작전 → 파독광부→베트남 전쟁->이산가족찾기
1) 흥남철수 작전
1950년 11월 말경 유엔군에 의한 무력 북진통일이 눈앞에 있었던 상황 서부전선을 담당하던 미 8군이 중공군에게 대패를 당하게 되면서 상황은 역전됩니다. 11월 30일 동부전선에서 호기롭게 북진 중이었던 미 10군단에게 함흥-흥남 지역으로 후퇴할 것을 명령합니다. 그 와중에 미 10군단 전체가 중공군에게 포위를 당하게 되고 최종적으로 유엔군은 12월 8일 흥남 철수 명령을 내립니다. 미 10군단 전 병력이 흥남으로 집결 부산으로 철수를 시작하는 것이 1.4 후퇴의 전초전입니다.
당시 함경도의 전역이 중공군 수중에 넘어간 상태라 해상로의 철수가 불가피했고 흥남항 부두 중심으로 방어선을 구축하고 동해에 위치한 미 해군의 함포 사격의 도움을 받으며 유엔군 및 한국군은 철수를 하게 됩니다.
피란민을 태운 배에 처음에는 1만 명까지 태우기로 했으나 1만 명을 돌파하고 1만 2000명이 넘어서는 시점부터는 세는 것을 포기하고 어림짐작으로 1만 4천 명 정도가 탑승한 상태로 이동하게 됩니다.
영화 초반의 가족들이 헤어지게 되는 이 극적인 모습이 바로 흥남철수 작전의 배경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2) 파독광부
1960~1970년대 박정희 정부의 실업문제 해소와 외화 획득을 위한 해외인력 수출의 일환으로 서독에 파견한 노동자였습니다. 주로 광부와 간호사 및 간호조무사로 구성되었습니다.
1963~1977년 사이 광부 7936명, 간호요원(간호사, 간호조무사) 11,057명 및 기능공 931명 등 총 18,899명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당시 한국은 인구의 급증으로 인한 실업난에 처해 있으면서 서독의 노동력 부족 상황에 부합하는 상황으로 사실 이미 1950년대부터 민간에서 파견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파독 간호사로 재직했던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기본간호(대변 치우고 식사 도와주는 기본적인 간호)가 주요 업무였으며 무시와 차별은 상상을 초월했다고 전해집니다. 국내에서 처럼 간호사의 자격으로 할 수 있는 업무를 당장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광부 역시도 지하 1,000m가 넘는 막장에서 중노동을 했고 대부분의 지원자가 광부가 아니라 고졸 출신 등의 사람들이었고 심지어 대학까지 나온 사람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선발 심사 전형에서 떨어질까 싶어 일부터 석탄가루를 묻히고 평가 시험을 보는 사람들도 많았을 정도로 당시의 실업난은 심각했고 어떻게든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은 노력했다고 합니다.
계약기간 이후에도 파독 간호사들 대부분이 계약을 연장하고 독일에 살고 광부들 가운데 60% 정도도 독일에 남아 유럽 한인사회의 중심을 이루면서 이 기회에 독일 및 타국가로 이민하는 인구가 증가합니다.
3) 베트남 전쟁
1955~1975년까지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사이에 일어난 전쟁입니다.
2. 가장 평범한 아버지의 가장 위대한 이야기
격변기의 모든 역사를 함께한 아머지 윤덕수(황정민) 어린 시절 흥남 철수작전에서 가족들과 헤어지며 가장이 되면서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가족을 위해 헌신합니다. 부산에 사는 고모네 잡화점은 '꽃분이네'에서 얹혀살며 구두닦이를 하며 돈을 벌게 되며 남동생의 대학 진학을 위해 서독 광부 선발에 참여해 서독으로 가게 됩니다. 갱도에서 매몰당하기도 하고 죽다 살아날 위기를 겪고 목숨을 건지지만 비자가 만료되어 귀국합니다.
추후 아버지와의 약속 <'꽃분이네'에서 만나자>를 지키기 위해 일생의 꿈이었던 선장이 되기 위한 해양대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무리해서 가게를 인수한 후 그 돈을 메우기 위해 베트남 진출을 결심합니다. 베트남 전쟁에서 서독 광부 시절만큼 고생을 겪게 되고 건설 동료들과 함께 미군도 철수해 버린 한 정글에서 간신히 살아남습니다. 베트남에서의 총상으로 덕수는 평상 다리를 절게 되었고 이후 이산가족 찾기에서 가족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간신히 미국으로 입양된 여동생과 연락이 닿아 만나게 됩니다.
3. 평가
커다란 근현대사 역사를 주제로 했던 '포레스트 검프'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있었습니다. 인종 차별이나 전쟁의 미화, 우편향 영화라고 비난받은 것도 이 둘 영화가 같은 평가를 받은 점이 있습니다. 주인공의 행보가 뜬금없다고 보기도 했는데요. 실제 이 시기에 파독 광부와 베트남 파견을 둘다 겪는 일이 웬만해서는 있기 힘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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